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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호국 무예, 국술의 그날들 감상문- 전남과학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서나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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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서나래 | 아이피 | 59.2.***.62 |
작성일 | 2013년 6월 16일 21:22:33 | 조 회 | 5998 |
첨부파일 | 없음 | ||
내 용 | |||
국술인의 맹세의 내용을 보면, -나는 애국 애족하며 국제 간의 친선 도모는 물론 많은 일에 성실 근면하고 지역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헌식적으로 노력한다. 나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종교나 파벌을 초월하여 신의와 우정으로 각계각층의 선량한 국제민들과 협력한다. 나는 이와 같은 정신으로 복지 사회 건설에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서 세계평화달성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나와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가득 한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럴까 이번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기념하면서 국술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교양프로그램이 나왔다. 내가 본 편은 ‘호국 무예, 국술의 그날들’의 제목으로 시작한 내용이였다. 서인주 부총재님이 나와서 진행되는 토크식의 방송이였다. 무인들은 충성, 효도, 신의 이 세가지의 행동철학을 가지고 도를 닦았다. 서인혁 총재님은 여전히 활동 중이시라고 했다. 서인주 부총재님네는 5남 4녀로 모두 운동을 했다고 했다. 위의 형들의 영향을 받아 9살부터 무술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국술이란 고려무인시대를 지나며 전해진 공중무술, 사도무술, 불교무술을 합한 것이라고 한다. 1958년 국술원 창립을 하고, 1961년 대한 국술원 공식 출범을 하였다. 서인주 부총재님은 어릴적 영향도 있었지만, 군에서도 무술교관을 맡았다고 하신다. 국술은 나와 가족, 나라를 위한 무예이고, 숭고한 호국의 혼이라고 한다. 호국무예 촬영당시 주로 경주, 부산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전체 60명 정도의 인원들로 찍었고, 그때 당시의 제작진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호국무예의 제목의 의미는 우리나라의 무예는 호국을 위해 발전하며 전승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인과 무인으로 나뉘는데, 문인무예 사도무술은 맨손이나 활을 이용하고, 무인문예 사도무술은 주로 검을 사용 한다고 한다. 사회자가 무인무예무술은 위험하지 않냐고 했는데, 목검으로 하는게 더 위험하다고 했다. 진검으로 하는 이유는 정신이 더 잘 깨고, 칼이 휘둘려서 공기가르는 소리가 굉장히 좋다고 웃으시면서 부총재님이 답해주셨다. 또한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고 했다. 단전호흡과 국술 호신술 시범을 보여줬었는데, 상대를 한번에 제압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많은 연구 끝에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국술은 1970년 미국으로 갔다, 외국인들은 국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우리말도 배우고 있었다. 총 회원은 62개국 450만명이였는데, 굉장히 어마어마 한거 같다, 국술 세계화 성공 요인은 첫째, 무엇보다 국술은 무예의 기술이 뛰어난다는 점이다. 둘째, 해외 진출 당시(70년대)부터 사범들이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 했다는 점이다. 셋째, 실패를 겪은 후 재정비한 운영방식의 비결이다. 한국인으로서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첫 도장을 열었을 때 중국 음식점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어느 할머니께서 음식점으로 오인해서 메뉴판을 달라고 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1970년대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의 가라데, 중국의 쿵푸는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국술은 막 나아가는 단계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지금은 웃으면서 하셨지만, 그때 당시엔 얼마나 당황스럽고,속상 했을까 싶다. 그치만 그때일을 계기로 열심히 했기에 지금의 국술이 있지 않을까 싶다. 꼭 속상한 에피소드만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도장 운영 초기, 찾아 온 손님과 의사소통에서 오해로 결투를 하게 된 것이다. 그일로 그 흑인은 도장에 입관하기로 했고, 그 흑인은 알고보니 미국 유명 풋볼 선수 였던 것이다. 부상으로 인해 재활중 무술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 였는데, 그 일로 인해 한달 만에 회원이 120명이 늘어서 한국에서 사범이 지원을 와야 할 정도 였다고 한다. 서인주 부총재는 예전 한 축제에서 시범 경기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관중 중에 있던 한 아이가 자신이 먹던 콜라병을 주면서 이것도 깨달라는 상황에서, 프로정신으로 깼는데, 그순간 조명은 꺼지고 서인형 총재님이 나오면서 퇴장하셨다고 했는데, 이마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 하신 것이다. 인상은 조금 무서워 보이셨는데, 정말 인자하신 분이 신것 같다. 미국인들은 종목보다는 사범을 보고 도장을 선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태권도나 합기도 이렇게 종목을 보고 가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의 합리주의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이아파 하루라도 쉬는날이면 환불을 요구하는게 미국인들 이라고 한다. 그만큼 프로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높은 지위라고해서 앉아서 폼만 잡는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투명한 사업 경영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금을 잘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유단의 조건 중 우리나라 전통춤이나 악기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무술을 익히며 우리나라의 것을 알리려는 정신이 돋보인다. 외국인이 도장 개설할 시에는 국술사관학교 졸업도 필요하다고 한다. 국술은 우리나라 무예 중 유일하게 특허를 받았고, 세계 프렌차이즈 가맹 제도로 정체성을 유지하며, 통일성을 강조하여 전 세계 무예 기술, 심사, 도복을 통일 하였다. 이번 10월 국술대회가 있는데 전에 호연사범님께서 얘기해 주셨던게 생각이 난다, 외국에서도 오는 큰 축제라고 몇일동안 한다고했었는데, 만약 시간이 된다면 나도 가보고 싶다. 약 1800명 정도의 선수들이 참관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대회가 될 것 같다. 마지막에 서인주 부총재님이 우리무예의 뿌리는 호국이라고 하셨는데, 마지막까지도 호국의 정신을 이야기해 주셨다. 45년의 무술의 길을 걸으시며, 묵묵히 지켜온 무술이 너무 멋있고 자랑스럽다. 외국만큼 한국에선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빨리 우리의 것을 알려 국술이 발전하여 나중엔 올림픽 경기에도 채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국술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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